4. 제4회 원동매화축제
꽃이나 사람이나 향기가 있어야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의 향기는 인품만큼 나타나는 마음의 향기지만, 꽃의 향기는 자기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뿜어내는 자연의 향기이다. 또한 사람의 향기가 사람마다 다르듯이 꽃이 내는 향기도 꽃마다 특색이 있고 깊이가 있다. 그 많은 꽃향기 중에서 제일 격조 높은 향기를 꼽으라면 아마도 매향이 아닌가 싶다.
사군자 중에서 첫 번째로 이름이 나오는 매화는 겨울의 설한풍 속에서 꽃망울을 맺고, 아무리 춘설이 난분분해도 때가되면 어김없이 봄을 알리기 위해 꽃망울을 터트린다. 매화의 이런 고결하고 지조 높은 기개 때문에 옛날 문인들은 매화를 군자로 의인화하여 문인화를 그렸으며 퇴계와 같이 매화를 광적으로 사랑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나보다. 요즈음에도 매화를 지극히 사랑하는 탐매가 들이 많이 있다지만 그렇게 광적은 아니지만 나도 매화를 좋아한다.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오마는 내가 매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오래되고 고풍스런 매화등걸에 붙어있는 작고 앙증맞은 꽃도 아름답지만 그보다는 그 여린 꽃잎에서 우러나오는 깊고 깊은 맑은 향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꽃잎에 코를 대고 깊은 숨을 들이쉬면, 짙은 매향이 코를 거쳐 허파를 지나 뱃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가는 듯한 후각을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매화구경을 간다고 하면 대부분 섬진강 가에 있는 청 매실마을(전남 광양시 다압면)을 먼저 떠올리지만, 부산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토종매실 100년의 명성을 자랑하는 원동(경남 양산시 원동면)의 매실농원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매화구경을 하려면 구태여 하동이나 섬진강까지 갈 것 없이 가까이에 있는 원동을 한 번 찾아가라고 권하고 싶다. 원동에는 옛날부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매실농원이 많이 있다. 산기슭 여기저기가 온통 매화 밭이며, 고목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매실농원에 들어서면 청매, 홍매, 백매가 어우러져 꽃 대궐을 이루고, 깊고 짙은 매향이 후각을 마비시킨다. 예년과 달리 벌써 소문이 많이 나고 유명세를 타서 금년에는 많은 상춘객이 몰려들었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오랜 역사와 명성에 비해 잘 알려져 있던 이곳에서도 매년 3월이면 매화축제가 열리고 있고, 올해로 벌써 네 번째의 축제(2009.03.14-15)가 열렸다. 제2회 때부터 매년 구경을 왔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영포마을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이루어져 홍보가 덜 된 탓에 여유를 가지고 축제를 즐길 수 있었는데 금년에는 양산시가 주최가 되어 신촌삼거리 도로가에서 행사를 여는 바람에 도로가 완전히 주차장 수준으로 막히고 행사장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로 행사장 주변이 너무 시끄럽고 시장터를 방불케 해서 불편함이 많았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 동안 매년 매화축제를 참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붐비지 않으면서도 꽃이 좋은 농원을 찾아, 눈이 시리도록 꽃도 보고, 코가 마비되도록 향기도 맡고, 냉이도 캐고, 사진도 원 없이 찍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어차피 다시 보려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참고삼아 원동의 매화농원을 소개한다.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경남 양산시에서 물금을 거쳐 삼랑진으로 가는 1022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된다. 물금에서 고개를 넘으면 화재마을이 나오고, 낙동강 둑을 따라 새로 난 길을 지나 한참 가다보면 휴게소가 있는 고개 마루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동네 어귀나 산기슭에 심어져 있는 많은 매화나무를 볼 수 있다.내리막길을 조금 더 내려가면 왼쪽으로 ‘순매원’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전망이 좋은 곳에 마련된 작은 주차장이 있다, 여기가 예전 원동역 관사가 있던 관사마을이고, 여기서 발아래로 내려다보면 양지바른 비탈면에 지천으로 핀 매화와 경부선 기찻길, 그 너머 넘실대는 낙동강 물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에 원동매실의 원조인 달호 매실농원이 있고, 그 옆이 순매원이다.
이 번 행사기간에 이곳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좁은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 양 옆에도 차선을 막고 차량을 주차시키는 바람에 도로는 온통 주차장이 되었고, 그나마 남은 좁은 틈새에도 매실 엑기스나, 매실 된장, 어묵이나 먹을거리 등을 파는 좌판이 늘어서 있어 구경은커녕 차가 도로를 빠져나가는데도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아침 일찍 출발하였기에 번잡하기 전이라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내년에도 이곳을 구경하려면 되도록 행사기간은 피하는 것이 좋고, 행사기간에는 이곳은 그냥 통과하는 것이 좋다.
여기는 양지바른 산비탈이 많아 원동에서 가장 일찍 꽃이 핀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 지난 2월 21일,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겨울인데도 이곳에는 도로 옆 양지바른 비탈에 드문드문 꽃을 달고 있는 백매나무와 꽃잎을 터트리기 직전 붉는 꽃망울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홍매나무가 너무 예뻐 사진을 찍었다. 뒤에는 출렁이는 낙동강물이 보이고.
행사장인 신촌삼거리(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리 신촌삼거리, 삼랑진과 배내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도로 양 옆에는 임시로 만든 음식점,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상인들이 장터를 방불케 한다. 요즈음에 지자체에서 무분별한 축제를 남발하고 있다지만 우리나라 어디에든 어떤 축제 행사장에든 빠짐없이 등장하는 비슷한 풍경, 시끄러운 확성기소리, 그 지방출신 무명 가수가 출연하는 노래자랑, 각설이 타령, 한복 입은 여인들의 민요잔치, 무대 위나 아래에는 신명나게 엉덩이 흔드는 술 취한 막춤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게 매화를 구경하는 것인지 사람구경을 하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행사장 주변의 어느 집 텃밭에 핀 화려한 홍매가 눈길을 끈다. 사진을 찍고 영포마을로 간다.
신촌삼거리(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리 신촌삼거리) 행사장
이 지방 출신 가수 이협
밭 둑에 심어진 홍매화
화단에 핀 홍매가 아름답다.
흐드러진 백매(영포마을 가기 전)
원동에서 매실나무가 가장 많이 심어져 있는 곳은 영포마을이다. 이곳은 신촌삼거리에서 배내골 방향으로 69번 지방도를 따라 함포마을과 선장마을을 거쳐 5km쯤 가면 영포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나오고 왼쪽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 선장마을에서 함포마을까지 가는 도로 오른쪽 옆 야산이 전부 매실농원이며, 영포마을 건너편 산에도 중턱까지가 전부 매실농원이다. 이곳 농원의 매실나무는 대부분 수령이 많아 나무 등걸의 모양도 좋고,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어 농장에 들어서면 마치 꽃으로 만든 터널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매실 밭에 파릇파릇 돋아난 냉이와 쑥이 지천으로 많아 나물을 뜯지 않고 지나치기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영포마을 입구
제4회 영포마을 매화축제(매화축제를 처음 시작한 곳)
영포마을 행사장(개울 건너 뒷쪽 산도 전부 매실밭이다.)
매화터널
백매와 홍매의 조화
홍매와 백매
냉이를 캐며
매화 꽃잎으로 무엇을 할까?
매화 터널 속으로
매화 밭인지 냉이 밭인지?
눈이 시리도록 매화를 구경하고, 거기에다가 봄의 맛을 느끼게 하는 봄나물까지 뜯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막혀 아무리 교통정체가 일어나도 짜증이 나지 않고 마음이 너무나 여유롭다. 다만 이런 희열을 맛보려면 또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도 남아 있겠지만, 머지않아 낙화 분분한 봄이 가고 매실이 영그는 무성한 여름도 지나가고, 낙엽 지는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도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매화나무 가지마다 또 다시 꽃망울이 매달리겠지. 그 때까지 잊고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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