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생활/돌풀과 함께

청도 운문사와 사리암(2022년 4월 19일)

물배(mulbae) 2022. 5. 15. 20:44

청도 운문사와 사리암(2022419)

 

  오랜만에 가는 운문사와 사리암이다. 구포역에서 청도행 95분 무궁화열차를 타고 청도역애 내리니 957, 운문사행 버스 출발시간은 1040분이다. 40분 동안 어슬렁거리다가 버스를 타니 마침 오늘이 청도 장날이라 버스가 상당히 복잡했다. 항상 그랬듯이 시골버스를 타면 볼 것도 많고, 승객(장을 보고 오는 시골 노인)들의 대화도 정겹다. 특히 청도에서 운문사로 가는 이 버스를 타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읍내를 벗어나면 바로 펼쳐지는 그 유명한 청도 감나무과수원(매진, 부야마을)의 파릇파릇 돋아나는 연두색 감나무 잎과 그 사이사이에 보이는 푸른 청보리밭, 지금 이때(조금 늦어 꽃이 지고 있다)만 볼 수 있는 화려한 武陵桃源(부야에서 곰티재까지의 넓은 청도복숭아밭), 곰티터널을 지나면 나타나는 감말랭이 원산지라는 관하리, 조금 더 가면 동창천 강변에 있는 삼족대(예전에 상동에서 이 길을 걸어 매전까지 걸었던 追憶), 다리 건너 경치 좋고 풍요로운 옛 동네 금천리, 이름난 古宅이 즐비한 선바위길, 처진 소나무가 있는 매전, 조금 더 가면 10분 간 대기하는 동곡공용정류장. 다시 출발하여 대천공용정류장을 지나면 운문댐, 가뭄에 물이 줄어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의 저수지를 바라보며 한참을 가다보면 길 옆 곳곳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펜션들을 보며 갈림길(언양과 운문사)인 신원리(복호산, 지룡산 등산로 들머리)를 지나 드디어 도착한 운문사 정류장까지 1시간 10, 길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 시골버스여행이다.

  운문사 정류장에서 매표소까지 가는 ‘솔 바람길은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인 고목 느티나무와 V자 모양의 송진채취 傷痕을 가진 상처투성이 줄기로도 그 오랜 세월을 꿋꿋이 버틴 아름드리 소나무 群落 밑에는 새로 심어 단장한 꽃무릇(9월에 한 번 와야겠다)과 맥문동 사이로 걷는 이 길은 '솔 바람길'이라는 이름답게 상쾌하고 걷기 좋은 길이다. 옛날에는 이 길 初入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如風不繫於網)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如犀角獨步行)”라고 적혀있는 간판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은 이전에는 게을렀더라도 지금 게으르지 않다면 그는 이 세상을 비추리라.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법구경)”이라는 看板이 걸려있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전에는 경로라고 말만하면 통과시켜주던 안내원이 경로 무료입장자격이 70세 이상이라고 주민증을 보잔다. 매표소를 지나 경내애 들어서면 여기에 올 때마다 항상 들렀던 전망 좋은 북대암 가는 길을 애써 외면하고 운문사로 갔다. 석탄일 봉축등이 주렁주렁 매달린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豫定대로 사리암으로 갔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사리암으로 올라가는 등산길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주차장 옆 지팡이를 모아둔 통에서 성불하세요라고 새겨진 꾸불꾸불한 도사 지팡이(예전에는 그냥 나무 막대기였다) 한 개를 골라 짚고 937계단을 숨 가쁘게 올랐다. 예전에는 운문사에서 사리암까지 40분이면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시간 넘게 걸렸다. 속도가 느린 것은 아마도 나이 탓, 나보다 항상 빠른 길벗 돌풀도 오늘은 나보다 늦게 올라오고 있었다. 계단을 새로 정비하면서 100계단마다 숫자로 표시해 둔 것이 오히려 더욱 힘들게 했다. 계단을 세지 않고 앞만 보고 그냥 올라가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암자가 가까워질수록 소리도 크개 들리는 운율에 맞춰 반복적으로 나반존자만 되풀이 독송하는 불경소리를 들으며 사리암에 도착했다.

<사리암의 연혁>

사리암은 고려 초의 고승 보량국사가 930년에 초창하였고, 1845(조선 헌종 11) 정암당 효원대사가 중창하였고 1924년에 증축, 1935년에 중수하였다. 이곳은 특히 나반존자의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나반존자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 중생을 계도하려는 원력을 세은 분으로 부처님 당시 부처님 부촉을 받고 항상 천태선상에서 홀로 선정을 닦으며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의 복밭이 되어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는 존자이다. ---중략---

천태각은 일명 독성각이라고도 하며 1845년에 신파대사가 초창하여 나반존자 상을 봉안하였다. -----후략------”

이 연혁을 보고 인터넷과 옛 동료 역사 선생이 쓴 서출지에 비친 남산속의 신라라는 현장학습자료를 참고하여 밑줄 친 단어를 중심으로 의문 나는 用語를 풀어본다.

* 나반존자 : 독성수 또는 독성존자라고도 하며 우리나라 불교에서만 숭상하는 신앙의 대상이다. 독성은 소승불교에서 홀로 인연의 이치를 깨달아서 도를 이룬 성자들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나반존자가 홀로 깨친 이란 뜻에서 독성 혹은 독성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사찰에서는 독성기도를 많이 올리고 있는데 나반존자의 영험이 매우 커서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면 속히 영함을 얻게 된다는데 기인한 것이다.

* 나반존자 : 우리나라 사찰에 모신 나반존자 상은 하얀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있으며 흰 눈썹이 매우 길게 묘사되어 있고 흰 얼굴에 미소를 띤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최남선은 절의 삼성각이나 독성각에 모신 나반존자는 불교의 것이 아니라 민족 고유 신앙의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나반존자는 독성각 또는 삼성각에 봉안되며 독성각에는 나반존자 상이나 탱화를 단독으로 모시고 삼성각에는 칠성,산신 등과 함께 모신다.

* 미륵불 : 미륵이란 범어 미트레야를 音譯한 말로서 현재는 보살로서 천상의 정토인 도솔천의 천인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지만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567천만 년이 지나면 사바세계에 나타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중생을 구제(미륵불의 세계인 용화세계에 태어나게)한다는 미래의 부처님이다. 그러므로 미륵불을 모신(봉안하는) 법당을 미륵전 또는 용화전이라 하며 금산사의 미륵전이 대표적이다,

* 부처님의 부촉(咐囑) : 부촉은 불법의 보호와 전파를 다른 이에게 부탁한다는 뜻으로 부처님이 제자 56명에게 처음으로 전도를 부촉하였고, 이 56분의 아라한이 전도활동에 나서면서 불교교단은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 말세의 복밭 : 福田<복밭>이라는 것은 불교 신앙의 대상인 부처 또는 승려의 호칭으로서 논밭에 곡물을 자라게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처와 보살 법사들에게 공양하고 삼보를 숭봉하면 복덕의 열매를 얻게 됨으로 복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말기나 고려시대를 통하여 승려를 복전이라고 하였다.

* 천태선상 : 중국 천태산에서 혼자 도를 닦아 연각을 성취한 나반존자를 독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반두로존자 혹은 가섭이라고 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미륵불을 찾으니 삼세불이 나오고 삼세불을 찾으니 삼신불(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이 나오고 삼신불을 찾으니 협시보살이 나오고 보살(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등)을 찾으니 당우(법당)가 나오고 당우를 찾으니 편액과 봉안된 주존불이 나오고--아! 끝이 없다. 그래도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찾아 노트에 적으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몰두하게 된다. 그렇게 정리한 것이 상당한 분량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절을 찾는 것도 재미가 있겠다 싶어 바로 실행에 옮겨 통도사와 범어사를 찾았다. 그렇게 당우(절의 건축물)의 편액을 중심으로 촬영한 것을 다음에 설명과 함께 올리려 한다. 재미삼아 찾아 본 불교용어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무신론자인 나의 생각은 우리나라 불교 신도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所願하는 祈福을 중심으로 자기 마음대로 법당을 정해 소원성취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종교란 결국은 자기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기복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복호산과 지룡산

 

호거산 운문사

작압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관음전

사리암

사리암 천태각(나반존자 상이 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