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생활/여행과 사진

제23회 마산국화축제와 돝섬해상유원지(2023년 10월 31일)

물배(mulbae) 2023. 11. 4. 17:12

 시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날씨가 아직도 덥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마산국화축제(제23회)를 다녀왔다.

간 김에 돝섬해상유원지를 둘러보며 옛날 생각을 많이 했다. 그때는 숙박시설과 동물원도 있었고,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마산 유일의 관광지였다고 기억한다. 그 시절,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힌 한 마리 커다란 오랑우탄(힘 자랑을 하느라고 타이어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가)을 보고 '猪島의 猩猩이'라는 수필을 썼던 추억의 돝섬이 지금은 몇몇 나이 많은 할배, 할매들만 찾는 곳으로 변하여 있었다. 올라 가는 길 옆에 활짝 핀 大菊 국화 화분이 놓여 있고 메리골드와 댑싸리가 심어져 있고 '가고파 시비'가 있는 정상을 올라갔다가 내려와 잘 정비되어 있는 해안 둘레길을 따라 돝섬을 한바퀴 돌고 선착장에 와서 유람선을 타고 해상유원지 선착장에 내려 걸어서 국화축제가 열리는 3.15 해양공원으로 갔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역시 국화축제는 23회라는 긴 연륜을 자랑하는 마산국화축제가 단연 돋보였다. 축제답게 붐비는 많은 사람들, 먹거리 장터와 만물상, 축제에 빼 놓을 수 없는 각설이 품파 공연, 이름 없는 가수의 길거리공연 등은 물론이고 테마별로 잘 꾸며진 수 많은 화려한 꽃들, 명품관의 다륜대작(특히 신문에 난대로 국화 한 줄기에 1315송이의 꽃으로 영국 기네스 공인 기록으로 인정된 '천향여심'이라는 다륜대작)들과 어느 한 곳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꽃길을 진하디 진한 국향을 맡으며 천천히 걸었다. 특히 마산이 낳은 유명한 조각가 문신(문신미술관 : 창원 합포구 추산동에 있다) 작가의 작품을 테마로 한 문신 작품 테마존이 눈길을 끌었다.

 

                        . 돝섬(猪島)의 猩猩이 (舞鶴 제38호, 1980년)

                 -우리 속에 갇힌 나, 그리고 모든 인간 猩猩이들에게-

 

 「오랑우탄(猩猩이), 보르네오 섬 産, 類人猿科, 靈長目, 現存 동물들 가운데 가장 지능이 발달된 猿人임, Orangutan(오랑우탄)이란 말레이지어語의 ‘森林의 사람’이란 뜻에서 由來되었고, 인간의 始祖이다.」

 이것이 이놈의 이력서입니다. 이놈은 보르네오 섬의 울창한 삼림 속, 높은 나무위에 나뭇가지로 지어놓은 보금자리(Nest)에서 처음으로 이 세상의 빛을 보았으며, 모두가 그랬듯이 어미 성성이의 젖을 빨고 자라났고, 아비 성성이가 따다주는 과일을 먹으면서 몸을 살찌웠습니다. 이놈이 일어서서 걷고, 달리고, 나무를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비 성성이가 엄숙히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너는 네 스스로 自給自足하여야 한다. 그런데 네가 가장 경계하여야 할 것은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인간이라는 동물이며, 이 인간들은 하나같이 모두 나쁜 놈들이라서 믿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들을 보기만 하면 잡아가며, 심지어 우리의 골을 끄집어내어 요리해 먹기도 하는 악랄한 동물이니, 인간들이 사는 부근에는 얼씬거리지도 말아야 한다.”

 그때부터 이놈은 보금자리를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이놈이 처음으로 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밝고 찬란한 햇빛이 아름다웠고, 이름 모를 풀 한 포기, 한 송이 꽃, 높은 하늘, 굴러다니는 조약돌…. 세상은 참으로 신기한 것 들 뿐이었습니다. 조약돌을 집어 던져도 보고, 나무타기도 하였으며, 다른 성성이들과 풀밭에서 뒹굴며 장난질도 하였습니다. 세상은 넓고 아름다웠으며,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차츰 두려움이 없어진 이놈은 아비 성성이의 경고도 무시한 채, 호기심이 생겨 인가 근처를 어슬렁거리게 되었고, 마침내 인간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올가미에 씌어 오줌을 질금거리면서 끌려가 우리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이놈에게 모진 시련이 닥쳐왔으며, 인간들이 얼마나 무서운 동물들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고, 세상이 비참하다는 것도, 자유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여름이면 이놈을 둘러싼 各樣各色·形形色色의 인간 群像들을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손만 내밀면 던져 주는 초코레트도, 새우깡도, 뽀빠이도 참 맛있습니다.

 언젠가는 구경 온 어린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라고.

그 어린아이는 대답했습니다. “사자”라고. 그래서 옆 우리의 사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밀림의 왕자라고 하는 동물의 왕인데 어찌하여 여기 이 철책 속에 갇혀 사느냐?”고.

그 늙고 이빨 빠진 사자는 힘없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은 힘으로만 지배되는 사회가 아니다.”라고. 이번에는 어떤 아저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저씨,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 아저씨는 대답했습니다. “돈과 권력”이라고. 그러나 이놈은 mass(대중), machine(기계), mammon(돈의 신)이 지배하는 인간사회를 모르기 때문에 이 말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구경할 人間群像들도 드물어 졌습니다. 맛있는 초코레트도 과자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常夏의 나라에서만 살아온 이놈은 꽁꽁 얼어붙는 혹한이 싫습니다. 낮에는 양지바른 곳에 쭈그리고 앉아, 밤에는 까만 밤하늘을 쳐다보며 푸념합니다.

「나는 이미 나를 亡失하였고, 고향을 상실하였다. 우리(藍)안의 한 마리 야수로서, 어딘가에 있을 나의 종족과 자유와 빛, 내 뒤에는 조련사가 고함을 지르고 出口는 봉쇄된 지 이미 오래다. 나는 비록 너희 인간들의 慰戱를 위한 曲藝師 노릇을 하고 있지만 너희 인간들도 보이지 않는 鐵柵속에서 고향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는 서글픈 운명을 너희들은 알고 있느냐?」     

 

※마산고등학교 교지 무학(1977. 3. 1 - 1984. 2. 29 재직)

 

문신 작품 테마존

공작

좋은 날

명품관(다륜대작)

천향여심 다륜대작(꽃이 아직 덜 핌)

각설이

돝섬해상유원지

돝섬황금돼지상

돝섬 출렁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