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생활/日常에서

마산고 37회 졸업 40주년 기념식과 3학년 6반 반창회(2018년 4월 21일, 5월 26일)

물배(mulbae) 2018. 6. 16. 12:22

★ 지난 3월인가, 졸업 40주년에 초대한다는 김형준 회장의 전화를 받고 생각해 보니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젊은 시절(1977년) 1년 동안 담임을 맡은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잘 해 준 것이라고는 없는 1년간의 擔任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40년이라는 긴 긴 세월 동안 행사 때마다 불러주는 過分한 特惠德分으로 옛날 생각도 하게되고, 그 때 그 시절(추억은 항상 아름답다)의 소소한 事件들과 추억들을 떠올리며 혼자서 微笑짓게 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오랜 시간 학창시절의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있었기 때문에 연결 고리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는 나의 역할이 조금은 있었다는 自慰를 한다. 

 돌이켜 보면 1972년 남창고등학교에서 초임 발령을 받고, 1975년부터 2년간 김해고등학교(제1회, 3학년 8반 담임)에서  근무하다가 나도 모르게 마산고등학교로 발령이 나서 '75년 3월 2일, 출근하니 3학년 담임에다가 주당 30시간의 학과(그때는 예비고사, 본고사가 있던 시절)수업 시간이 配定되어 있어 當惑스러웠던 記憶도 잠시 대입 본고사 준비를 위해 대입 학원(종로학원, 대성학원 등) 본고사 문제집을 비롯하여 출간된 모든 참고서를 熱心히 工夫하여 가르치던 1년이었다고 기억한다. 다행히 학생들도 잘 따르고 進學成績도 좋아 그로부터 7년간 근무하며 4번의 3학년 담임을 하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純全히 時運의 德이었다고 생각된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서른 둘의 새파란 나이에 무엇을 알았을까마는 그 때는 그래도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두려움을 몰랐고, 학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 수업에 대한 熱情으로 充滿한 시간이었던 같다. 지금 같았으면 暴力敎師로 烙印찍혀 退出당할 정도의 事件(1989년 쯤인가 장전동 새로 지은 우리집 집들이 겸 반창회 때, 30여명 떼거지로 몰려와 '옛날에 선생님한테 맞았다'며, 그때 '왜 때렸냐'고 애교삼아 대들던 일)도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제자들이 잘 되기를 바랐고, 잘 살고 성공했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나 자신을 보며 지금도 자부심을 가진다.

 행사 당일, 졸업하고 40년만에 처음 만나는 제자들을 포함해서 우리 반 참석자가 가장 많았고(부인 동반 23명 참석), 너무 시끄럽고 산만하여 세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현직에 남아 있는 사람보다 퇴직한 제자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일부러 내가 있는 자리에 찾아와 자기 소개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던 다른 반 제자들과 작고한 담임을 대신해 담임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자기 반 모임에 나를 끌고가 술을 권하던 4반 제자들도 기억에 남고, 아무 관계도 없는데도 마치 자기 담임처럼 환대해 주던 제자 부인들, 공진단(제자 덕분에 난생 처음 먹어 보는 보약)을 조제해 선물한 신동민 원장, 반 별로 따로 마련된 술자리에서 술도 먹지 않고 밤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집까지 태워준 임현칠 군(나이 60인 제자 보고 군이라고 하기엔 어색하다) 덕택에 한결 고조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만 열 명의 담임 중에 다섯 명만 참석(세 분은 作故, 한 분은 요양병원)했다는 사실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마고 37회 졸업40주년 환영사"

Well Again(친구야 함께 가자) 

희망과 열정으로 빛나던 얼굴은 연륜과 인품으로 온화하게 변했습니다. 졸업 40주년을 맞이하여 함께 해 온 40년을 자축하고 함께할 40년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가정과 사회를 위하여 참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중략)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희망이 아니고 의무입니다.'                    





★ 40년, 참 질긴 인연이다. 내가 처음으로 집을 장만하고 이사를 가던 날('77년 8월, 체력장 검사 연습 날) 이사짐을 날라준다고 우리반 학생 전원이 학교에서 나와 이사할 것이 없으니 주인집 창고에서 연탄(세들어 살던 주인집에 그냥 두기로 한 연탄)을 꺼내 몇 장씩 손에 들고 1km쯤 되는 거리를 떼지어 오던 일, 졸업식을 마치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눈물 흘리던 일, 막걸리 통을 들고 소풍(그때는 반별로 소풍) 갔던 일, 부산으로 이동한 후(1988, 89년 쯤인가?) 장전동 새로 지은 집에 30여명이 떼거지로 몰려와 술판을 벌이던 일, 그 후에도 몇 년에 한번씩 심심하면 찾아오던 연으로 퇴직후에도 통영 금호마리나리조트에서 1박하며 한 반창회를 비롯하여 무학산둘레길 걷기, 경주 모화 리조트에서 1박 등 참으로 끈질긴 반창회다. 전에도 그랬지만 나도 정회원을 하기로 하고 회비도 내기로 했다. 다만 몇 년만 하고 더 늙기 전(老醜는 싫다)에 나는 빼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