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서안·구채구 여행

4박 6일, 서안/황룡/구채구 여행 - 1 (2012년 10월 5일-10일)

물배(mulbae) 2012. 10. 15. 08:47

서안/황룡/구채구(2012년 10월 5일 - 10월 10일, 4박 6일) 여행

 

* 부산출발 하나투어 패키지 상품

- 여행기간 : 2012년 10월 5일(금) 22:05 ∼ 2012년 10월 10일(수) 06:10

- 상품 가격 : 1,537,300원( 여행 경비 1,399,000원 + 유류할증료 113,300원 + 단체비자 25,000원)

-불 포함 : 140$(가이드 팁 50$ +선택 관광 장한가 50$ +전신마사지 10$ +30$)

-인원 : 20명(20∼30대 1명, 40∼60대 13명, 60대 이상 6명, 부부 9쌍과 모녀 1쌍)

-인솔자 : 부산(박중선), 서안(박해광), 구채구(박철승)

 

 여행의 즐거움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특히 여행사가 설계한 잘 짜인 일정표대로 인솔자의 깃발만 보고 따라다니다가 천편일률적인 해설만 건성으로 들고, 인증사진 찍고, 장소를 옮기는 패키지여행의 경우에는 어떤 나라 어떤 도시를 가느냐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즐기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넓은 대륙 중국의 4대 자연경관(‘05,01. 29-02.03, 계림/장가계 여행, ’08. 08.18-08.21 상해/항주/황산 여행)중 가보지 않은 마지막 멋진 자연경관인 황룡/구채구 여행이라 더욱 기대가 컸다.

1. 여행을 준비하며

 내일은 어차피 오늘보다 늙을 테니까 젊을 때 힘이 드는 곳부터 먼저 여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친구들을 모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우리 부부만(얼마 전 아내의 일본여행을 주선한 여행사를 통해) 이미 여행날짜가 확정된 패키지여행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여행일이 확정되고 나서 허리가 좋지 않은 아내는 체력을 보강한다고 열심히 운동(아쿠아로빅)하고, 하루의 일과가 여행자와 같은 삶의 여로를 걷고 있는 나는 평소처럼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여행날짜가 사나흘 전으로 임박하여 남들이 하는 여행패턴(블로그를 여행기, 사진 참조 - 관련정보 검색 - 정리해간 정보로 여행지 둘러보기 - 내 사진기로 사진 남기기 - 돌아와 여행기 쓰기)을 따라 인터넷을 뒤져 사전 지식정보 탐구에 들어갔다. 서안(Xian)을 알기 위해 찾은 중국의 역대 왕조와 도읍지, 秦나라(진시황릉과 병마용갱), 당나라(당 현종과 화청지), 중국의 4대미인(초선, 서시, 왕소군, 양귀비), 현장법사(쯔언사와 다엔탑), 서안사변(1936년 장학량과 양후청), 장한가(백거이, 양예모 감독) 등에서 황룡풍경구와 구채구풍경구까지 출발 직전까지 오랜만에 공부를 했다.

2. 출발일(10월 5일)

 김해공항 미팅시간이 저녁 7시 35분(출발시간 22:05)이라 시간이 많다. 아침에 짐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고 느지막하게 김해공항으로 출발했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공항식당에서 아내와 순두부백반(한 그릇으로 둘이 나눠 먹음)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짐을 부치고 공항에 들어갔다. 미리 구입한 물건도 없고 해서 면세점을 어슬렁거리다가 비행기를 탔다. 긴 시간(3시간 20분)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되살아나는 첫 유럽여행(1993년)에서의 그 지루하던 기억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담배 연기 자욱한 밀폐된 공간에서 의자는 좁아 움직이기도 부편하고, 영화를 봐도 집중이 되지 않고, 잠을 청해도 잠도 오지 않고, 수많은 공상을 해도 시간이 가지 않아 주리가 뒤틀리는 열세 시간의 고역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여행의 고통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짐을 찾아 공항을 나와 현지 가이드를 만나 버스에 타니 새벽 1시(우리나라 시각 2시), 한 시간쯤 달려 호텔에 도착하여 간단히 씻고 잠을 잤다.

3. 제2일차(10월 6일)

 오늘은 서안 관광이다. 늦게 출발(10시)한다고 했지만 평소대로 일찍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아내는 호텔 주변에서 파는 대추(감나무와 접을 붙여 대추가 매우 크고 달다)를 사서, 버스 속에서 함께 온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첫 대면 인사를 대신하고 서안 관광을 시작했다. 서안(Xian)은 현재 중국 산시성(시베이성)의 성도로 옛날 한, 위, 수, 당나라 시대의 국도였던 장안성이 있던 천년의 고도로서 가장 번성하였던 시기는 당나라 때라고 한다. 서안의 주요 볼거리는 당나라 황제들의 온천휴양지로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전설이 담긴 화청지(화청궁), 37년에 걸쳐 만든 세계 최대의 능인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현장법사가 지었다는 쯔언사(慈恩寺)와 다엔탑(大雁塔), 서안역사박물관, 비림(碑林), 서안성벽 등이 있다.

오늘의 첫 일정은 화청지 관광이다. 화청지는 숙소에서 1시간 거리인 서안시 임동구 여산 밑에 있었다. 버스를 타니 말이 많고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이 끝없이 이어졌다. 대충 소개하면 먼저 여행날짜를 잘 잡았다는 것이다. 중국은 10월 1일부터 7억 인구가 이동하는 연휴기간이라서 관광지마다 내국인들로 북적대서 어제까지만 해도 구채구 관광은 사람이 많아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었는데 내일부터는 연휴가 끝이 난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서안에 대한 설명이었다. 서안이 역사적으로 천 년 동안 중국의 국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면은 황하, 나머지 3면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침입할 수 있는 곳이란 오직 함곡관 밖에 없는 천연의 요새라는 지형조건 때문이며, 가장 번창했던 당나라 때는 동서 10km, 남북 9km, 인구 100만 명이나 되는 거대도시였으나 당의 쇠태와 더불어 장안성도 쇠퇴하였으며 지금은 명나라 때 구축한 14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외 새로 개발한 외곽지대에 84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중국교포(조선족이라 부르지 말자고 했다)로서의 자부심에 대한 설명을 했다. 13억 인구의 2%도 안 되는 240만 명의 중국동포이지만 잘 사는 나라의 동포로서의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1992년부터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지만 우리나라가 중국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2년 월드컵 때문이란다.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온통 붉은색으로 치장한 ‘붉은 악마’의 거대한 집단 응원을 TV로 시청하며 7인 이상의 집회가 허용되지 않는 중국에서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크나큰 감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또한 한류열풍을 일으킨 드라마의 영향으로 대장금에서의 이영애는 한국의 대통령보다 더 알아주는 유명인사 이란다. 또 다른 자부심은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삼성, 현대, LG)의 영향이란다. 특히 LG는 2003년 사스(조류독감) 때, 철수한 다른 외국 기업과는 달리 더욱 공격경영을 하여 서안에서만 35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현재도 가전제품은 전부 LG제품을 쓰며, 휴대폰은 삼성, 자동차는 현대, 기아차를 선호하는 등 중국동포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게 해 준다는 것이다.

 자기가 정복한 6개 나라의 궁전을 전부 옮겨 놓았다는 진시황의 아방궁, 북경(금년 3월 28일-31일, 북경관광)에 있는 서태후의 이화원과 더불어 중국의 3대 별장 중의 하나인 화청궁은 당나라 황제들의 온천휴양지로서 특히 당 현종과 양귀비가 휴가를 즐겼다는 목욕탕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나 건물은 근래에 지은 것이나, 여산을 배경으로 웅장하고 화려함은 중국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의 특징 그대로였다. 저녁에 구경할 장한가의 무대가 되는 화청지,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용했던 목욕탕, 서안사변이 일어났던 柸 園 등을 1시간 가까이 둘러보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은 실크 제품 쇼핑장이 있는 식당에서 교자연 만두요리를 먹었다.

 오후 일정은 서안여행의 白眉인 진시황릉박물관이다. 진시황릉박물관은 국가가 지정한 1급(AAAAA급) 박물관으로서 한 장의 입장권으로 진시황제릉(여산원, 1979.7.1. 개방), 진시황제릉박물관, 진시황 병마용박물관(1호갱, 2호갱, 3호갱)의 세 곳을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인솔자가 매표소에서 구입한 표를 받아 순환버스를 타고 1.5km 떨어진 진시황릉부터 먼저 갔다. 시황제 즉위 초부터(BC247년) 시작하여 37년 간 70만 명을 동원하여 만들었다는 중국 역대 제 왕릉 중 최대 규모인 진시황릉은 동서로 485m, 남북으로 515m, 높이 75m로 왕릉이라기보다는 산이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그 규모가 놀라웠으며 왕릉 밑 지하에는 도굴방지용 시설과 더불어 지하궁전이 있고 지금도 발굴중이라 개방되지 않고 모의로 만든 지하궁전(입장료 10$)은 입장하지 않고 왕릉 주위 둘레길만 걸었다.

 다시 순환버스를 타고 진시황병마용박물관으로 왔다.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죽은 후에도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제작했다는 兵馬俑은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든 실물 크기의 병사와 말, 전차나 병기 등으로 그 거대한 규모나 정교함은 세계8대 불가사의에 포함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1974년 중국의 양지발이라는 농부가 이곳에서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이 병마용 갱은 세 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고 처음 발견된 1호 갱은 규모가 가장 크며 동서쪽으로 향한 긴 모양(동서 230m, 남북 62m)으로 장군과 병사가 길게 배열되어 있고 발굴하다가 파손된 병마용과 전차와 마차 등을 보수하여 전시되어 있으며, 2호 갱은 ㄱ자 형태의 1호 갱의 절반 정도의 작은 규모이며 전차나 기병들의 도용이 대형 군진을 이룬 모습의 갱이며, 3호 갱은 군진 전체의 지휘기관이 포진한 凹모양의 갱으로 여기에는 도굴로 파손되어 머리 부분이 많이 없는 병마용들이 많았다.

 2호 갱과 3호 갱은 제작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 중 일부만 발굴하여 전시하고 있었으며, 2,3호 갱 안에는 출토된 다양한 병마용(머리모양이나 복장 등이 실제 인물을 그대로 묘사한 장군 도용, 빨간 색채의 갑옷을 입고 앉아 있는 병사 도용, 전차와 말 등)과 유물(진나라 청동검 등)들을 유리벽으로 둘러싸서 전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700여개의 실물 크기의 陶俑, 100여개가 넘는 전차, 40여필의 말, 10만 여개의 병기가 모두 그 시대의 실제 무기와 똑 같으며 그 많은 陶俑들도 모두 제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 머리모양, 복장 등을 그 시대의 실제 모습과 똑같이 세세하게 표현한 2000년 전의 장인들의 투철한 장인정신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1호 갱에서 3호 갱을 거쳐 2호 갱을 구경하고 병마용박물관을 구경하였다. 박물관에는 발굴 당시 출토된 유물(청동 마차, 갑옷과 투구, 동물, 기와 조각, 청동으로 된 말과 마차 등)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발굴 모습과 병마용의 구조 설명, 병마용의 사진 설명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병마용 부근의 韓食堂에서 된장찌개와 삼겹살로 저녁을 먹고, 저녁 8시 10분부터 공연하는 가무쇼 長恨歌(선택 관광, 50$)를 보러 다시 화청지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화청지 주변은 낮과는 판이하게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고, 무대가 설치된 구룡지 주변은 물론, 배경이 되는 廬山 전체에도 조명 시설이 되어 있어 산 전체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화려하게 조명되어 있었으며 장한가를 관람하러 온 관광객들로 매우 혼잡스러웠다. “長恨歌 歌舞쇼”는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가 젊은 시절에 지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悲戀을 그린 “長恨歌”라는 長歌 형태의 敍事詩를 토대로 서안 출신 연출가인 장예모가 감독한 서막에서 제9막가지 10막으로 된 양귀비의 일대기를 그린 가무쇼(가극)이다.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 즐겁게 노는 것에서부터 안록산이 양귀비와 내통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현종은 도망가고 양귀비는 죽고, 나중에는 천상에서 재회한다는 줄거리로 여산 전체를 무대로 300명의 배우가 펼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2시간짜리 가무쇼였다. 밤늦게 끝나 다시 1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호텔에 오니 11시가 다 되었다. 내일의 구채구 관광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화청지(밤에는 여산을 배경으로 이곳이 장한가의 무대가 된다)

 

 

 

 

 

 

 

 

귀비지

 

 

 

 

 

 

서안사변이 일어난 곳(5간청)

화청지 입구

 

 

진시황릉

 

진시황릉

진시황 병마용 박물원

 

 

 

 

1호갱

 

3호갱

 

 

 

2호갱

 

 

 

병마용박물관

  진시황 시대의 전차

천인천면, 각 각 다른 머리 모양

 10월 7일 : 황룡 풍경구

4. 제 3일차(10월 7일)

 아침 일찍(5시 모닝콜, 6시 출발) 일어나 짐을 들고 도시락을 받아 서안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버스에 올랐다. 이렇게 아침 일찍 출발할 때 제공되는 도시락은 서유럽이나 북유럽 여행 어디에서나 그 내용이 똑 같다는 것을 알았다. 햄버거 한 개, 물 한 병, 삶은 계란 1개 등, 여기에서는 계란 대신 사과 한 개가 들어 있다. 사과는 가방 깊숙이 들어있는 칼 때문에 먹는 것을 포기하고, 빵은 버스 속에서 꾸역꾸역 먹었다. 수속을 마치고 7시 30분에 출발하는 중국동방항공 탑승, 정시에 출발하였다. 간단한 기내식(카스텔라 빵 1개와 쥬스)을 먹고 안내서에 나와 있는 한 시간의 비행시간 만 믿고 눈을 감고 기다리다가 기내방송을 듣고 바깥을 내다보니 봉우리에는 만년설로 뒤덮인 첩첩한 산봉우리(진정산맥)들이 나타났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기내방송은 계속되고 같은 풍경만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구채구/황룡 공항은 장개석 정부 때 군사공항으로 해발 3,500m의 공항으로 불순한 기상조건 때문에 비행기 연착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도 40분이나 하늘을 선회하다가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짐을 찾아 공항을 나와 현지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카르스트지형이 만든 뾰족뾰족한 검은 산과 산기슭에 있는 티베트족의 마을, 방목하고 있는 야크 떼와 말들을 보며 천주사 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김해공항에서부터 만난 각 각 다른 여행사에서 온 여행객들과 같이 돼지삼겹살로 점심을 먹었다. 이 곳 식당에서도 예외 없이 물건을 파는 곳이었는데 여기에서는 이곳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버섯(송이, 능이, 석이, 목이, 표고버섯)과 농산물이었다. 점심을 먹고 버스에 타니 가이드가 고산병에 대한 겁을 주기 시작했다. 황룡은 해발 4,000m(최고 높이 3,700m)인 고산지대(기압이 낮아 빵빵하게 부풀은 과자봉지를 보여주며 사람의 몸속에 있는 위장이나 내장도 이렇게 빵빵하게 된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며)라서 고산병에 걸릴 확률이 크니 산소통과 고산병 예방약을 구입하라는 것이었다. 나와 아내는 그냥 버티기로 하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유럽여행에서 스위스 융프라우를 갈 때가 생각났다. 스위스 인터라켄 오스트역에서 출발하여 융프라우전망대(해발 3454m)까지 가는 산악열차(1912년 개통)는 가는 도중에 3번이나 갈아타며,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낮아지는 기압에 적응하도록 정상까지 가는 동안 중간 중간에 전망대에서 5분 정도 정차하여 쉬는 시간을 주어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설계하였다는 설명과 함께 관광객 어느 누구도 산소통을 준비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이 나서 관광산업이 발달한 스위스와 중국의 차이를 느끼게 하여 씁쓸했다. 황룡풍경구까지 가는 길은 높은 산악지대를 올라갔다 내려가는 지그재그로 된 산악 길(노르웨이의 피요르드 가는 길보다는 훨씬 덜 아슬아슬 했다)이었으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차창 밖에 보이는 야크 떼와 카르스트지형 특유의 첩첩한 산 들, 만년설이 뒤덮인 산봉우리들을 보면서 셔터를 눌렀다. 한 시간여를 달린 후 황룡에 도착 매표를 하기 위해 여권을 달라고 했다. 중국에는 경로우대(60세 이상) 입장료가 50%란다.

 199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며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보호구로 지정된 황룡풍경구는 카르스트지형이 만든 기이한 경관, 탄산염의 침식으로 형성된 에메랄드색의 푸르고 투명한 웅덩이들, 갈색이나 황색 빛을 띤 형형색색의 연못, 연못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분경지)이 계곡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곳이다. 황룡 입구에서 “그러므로 로프웨이를 데리고(Thus to take the ropeway, 乘索道由此去)”라는 화살표를 따라 승강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제법 경사가 급한 산(높이가 2,000m)을 2분 정도 올라 케이블카에서 내려 황룡관광안내판 앞에서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오후5시 30분(3시간의 여유)까지 출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이 둘러싸인 원시림 속을 관광객들을 배려해 걷기 좋게 만들어 놓은 나무로 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날씨는 춥고, 비는 연신 오락가락하여 도중에서 되돌아오는 사람과 산소통을 코에 대고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기압의 영향으로 귀가 먹먹하여 연신 침을 삼키며 관광객들 틈에 끼어 한참을 걸어가니 五彩池가 나타났다. 五彩池는 해발 3,600m에 자리 잡은 황룡의 연못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취색 연못으로, 염전이나 다랑논에 물이 고여 있는 듯한 밭 모양의 연못이 3,4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비취색 연못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멀리 황룡고사도 물 위에 떠있는 듯한 황홀한 풍경에 연신 셔터를 눌렀다.

 오채지를 한 바퀴 둘러보고, 황룡고사를 지나 나무계단으로 된 관광도보 길을 따라 내려가는 주위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형형색색의 물빛과 계단처럼 층을 이루고 있는 연못, 물속에 잠겨있는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는 분경지, 바위 위로 흐르는 물줄기와 가느다란 폭포들, 끝이 없는 물웅덩이를 바라보며 산책로를 따라 출구에 내려오니 약속 시간보다 10분이 늦은(아내는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빨리 내려가고 나는 사진을 찍느라고 조금 늦었다) 17시 40분이었다. 꼴찌는 아니고 중간 정도인 것 같다. 우리 일행 중에는 아예 처음부터 올라가지 않은 사람도 있고, 도중에서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천주사 마을로 왔다. 버스 속에서 아내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좋지 않다고 한다. 다닐 때는 잘 다니더니 아마도 무리를 한 것 같다. 구채구에 가기 전에 천주사 마을에서 오늘의 피로를 풀기 위해 발마사지(10$을 더 주고 전신마사지)를 했다. 발마사지, 세게, 살살, 아파, OK 등 간단한 의사소통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며 냄새나는 남의 발을 주무르는 아가씨들의 모습이 불쌍하기보다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마사지를 끝내고 저녁도 먹지 않고(저녁은 구채구 호텔에서 먹기로 되어 있음) 구채구로 이동하는 깜깜한 밤의 3시간은 정말 고역이었다. 시속 40km의 저속 운전에다가 가이드와 운전사는 끊임없이 큰 소리로 지껄이고, 밖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등 등. 구채구 호텔에 도착, 늦은 저녁(아내는 저녁을 먹지 않음)을 먹고 내일의 구채구 관광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호텔에는 10월 말까지 난방을 할 수 없어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하였다.)

천주사 가는 길

 

티베트 마을

천주사 마을

 

천주사에서 황룡 가는 길

 

 

 

 

 

 

황용풍경구 매표소

황룡 케이블카(索道)

황룡퓽경구 안내판

케이블카를 내려서 오채지로 가는 길(고산병 때문에 되돌아 오는 사람이 보인다)

 

오채지 입구

 

 

 

 

 

황룡고사가 멀리 보인다

 

 

 

 

전망대에서 본 오채지

 

황룡고사가 오채지에 떠 있는 듯하다

 

 

 

 

 

 

 

 

 

 

 

 

 

 

 

 

 

 

 

 

 

 

 

 

황룡고사

걷기 좋게 만들어 놓은 계단 길

 

 

 

 

 

 

 

 

 

 

 

물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

 

 

 

 

 

 

 

 

 

 

 

 

 

분경지

 

폭포

 

 

 

 

細瀑

 

 

 

 

 

드디어 황룡구 출구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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