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합니다(초대장)
이번에 저가 경북중고46회 동기회 카페에 올렸던 글을 모아 난생 처음으로 수필집 <돼지고기 계세요>를 발간하였습니다. 당초 계획은 경로당 마당에서 조촐하게나마 출판기념회를 가지려고 했으나 아시다시피 코로나19로 집합행사를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개인 또는 소그룹 모임으로 7~8회 나누어서 행사 예정입니다. 일정은 5/20~5/31까지(25, 26, 27일 제외), 장소는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35-15 `통나무집식당(054-763-6484)`입니다. 참석 가능한 날짜를 알려주시면 일정을 조율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포항-영천 28번국도 안강 옥산서원 쪽으로 진입하면 왼편에 자옥산과 도덕산이 보입니다. 좌우 들판에 지금 모심기 준비하느라 논에 물을 가두고 있으며 백로가 개구리 잡느라 성큼성큼 걷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옥산서원(玉山書院) 옆에 `옥산서원 유물관`이 있는데, 국보 제322-1호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활자본으로 가장 오래된 보물 제524호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 외에 해동명적, 이언적 수필고본일괄 등의 보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전시관이 아니라 유물을 보관하는 곳이기에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옥산서원 앞에 자계천이 흐르고 큼지막한 이팝나무들에 꽃이 만개했습니다. 서원 내에는 한석봉,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명필가의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자계천 바위에 퇴계선생이 쓴 洗心臺(세심대)가 새겨져 있고, 개울 따라 천천히 600m정도 걸으면 보물 제413호 獨樂堂(독락당)이 있습니다. 독락당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선생이 낙향하여 기거하던 곳입니다. 여기에도 퇴계, 한석봉, 이산해 등의 편액을 볼 수 있으며 회재 선생의 보물급 장서들이 별도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독락당을 나와 옥산저수지 방향 좌측 100m지점에 태극기가 게양된 집에 저가 살고 있습니다. 다시 저수지 쪽으로 100m 왼쪽에 국보 제40호 정혜사지13층 석탑이 보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일반 석탑과는 모양이 다릅니다.
석탑 부근에 통나무집 식당이 있습니다. 닭, 오리백숙이 전문인데, 한 마리로 세 사람이 먹으면 딱 맞고 네 사람이 먹으면 이상하게도 남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옥산저수지를 포함하여 시골마을을 둘러보시면 반나절 소풍으로 좋으리라 추천합니다. 부득이 참석이 어려운분 들에게는 책을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성함(漢字)과 주소(도로명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책이 두꺼워(432p) 읽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는 분에게 무료로 드립니다.
연락처: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15-24 오만이(吳萬伊)
010-4420-3782 e메일: myoh4608@hanmail.net
책을 내면서(산고 끝에 태어난 이야기) - 오만이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태까지 살면서 겪은 경험과 느낌을 생각나는 대로 경북중고46회 카페에 편지 쓰듯 써 모아둔 걸 이번에 어렵사리 책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30년 전쯤 포항제철을 그만두고 개인회사에서 공장장으로 일할 때 생산현장 상황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작업표준서도 없이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게 안타까워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머릿속에 넣고 있었습니다. 포스코에 다닐 때부터 일본사람에게 기술을 배우면서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단한 자부심과 무엇이든 기록하는 습관을 어깨너머로 익혔습니다. 이후로 생산설비의 특징과 품질 등에 대한 자료들을 노트에 수없이 기록으로 남겨 간직했습니다. 나중에 은퇴하면 현장에 꼭 필요한 책을 만들어 후진양성과 노후대책으로 삼으려는 꿈을 키웠습니다. IMF여파로 회사를 그만두는 와중에도 자료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했습니다. 두 번째 옮긴 직장에서는 일에 너무 집중한 탓인지 수술조차 안 되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살아있을 이유조차 없는 마당에 책이 뭔 소용이냐며 자료들을 찢고 불태우고, 그토록 갈망했던 `생산현장 교범` 발간의 꿈을 버렸습니다.
그러다 권영재 박사가 “글을 써라, 무엇이든 일단 써보라”며 닦달을 했습니다. 그에게 문장을 잇고 끊는 방법부터 비빔밥에 참기름 한 두 방울 떨어트리면 맛이 확 달라지는 그런 기법도 닮아보려고 10년가량 애를 썼습니다. 글쓰기는 하면할수록 낯설고 귀찮지만 저에겐 기쁨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가을 우연히 <국제문예>에 저의 글이 소개되어 부끄럽지만 `수필가`로 등단하면서 용기를 냈습니다. 처음 마음먹었던 생산현장의 매뉴얼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은 멀리 갔지만 이 수필집 발간으로 평생소원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잡다한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사에 보냈더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 권 분량이라 재차 선별하여 400페이지 정도로 줄이려고 했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산고 끝에 `기능공 출신의 자전적 에세이`<돼지고기 계세요>가 태어났습니다. 내용들이 수준에 못 미치는 밋밋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입니다만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만 해주셔도 가문의 영광이겠습니다. 저도 책이 두꺼우면 읽기가 망설여지는데, 본문 전부 읽기 힘드시면 초·중·고 동창과 직장, 사회에서 인연을 맺은 다섯 분의 추천사만 읽으셔도 됩니다. 그 속에 저의 지나온 인생행로가 함축되어 있고 책을 만든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친구이자 스승격인 권영재 박사의 고마움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둘 중 한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하나가 눈물깨나 흘릴 것 같습니다.
끝으로 도서출판사 <온북스>에서 뒤죽박죽 헝클어진 글들을 장르별로 예쁘게 편집해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건 얼마나 독자들에게 읽히느냐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코로나19가 다소 누그러지면 우리 마을 경로당 뒤뜰에서 조촐하게나마 출판기념회를 열까합니다. 축가를 불러주겠다는 친구, 막걸리는 무한정 공급하겠다는 분은 이미 확보되어 있습니다.
늙은 노동자의 노래(추천사) - 권영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오만이가 왜 빨갱이가 되지 않았을까?" 오랜 동안 나의 화두였다.
출신이 얼마나 좋은가! 신천동 달동네에서 도시빈민의 아들로 태어났겠다, 자신 또한 평생을 공돌이로 살며 명예도 재산도 갖지 못하고 살았으니 어느 무리들 말대로 '백두혈통'이다.
본인은 이렇게 풀이했다. "안 굶어 죽으려고 정신없이 뛰다 보니 좌우를 살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참 어리석고 순진해 빠진 생각이다. 우선 천대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의미한다며 '천노해'라고 폼나는 이름부터 하나 짓는다. 그런 다음 이 모임에 끼어들어 행사에 뛰어다니다 보면 생계비는 물론 나중에는 뭉칫돈이 굴러들어온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는가 보다.
군대 갔다 와서 일만 죽도록 하고 살면 그게 애국이고 참삶이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니 내 복장이 다 터진다. 재벌이나 고관대작들 봐라 노동해서 돈 벌기보다 정상모리배 노릇해 돈 번 사람 많다. 현재의 정부 고위직 사람들 중에는 평생 월급 한 푼 받아본 적이 없으면서도 강남에 아파트 몇 채 씩 갖고 산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은 병역미필하고도 대통령까지 해먹었다.
오만이는 전방에서 졸병 노릇하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아 굶어 죽느니 차라리 월남 가서 총 맞아 죽는 게 낫겠다' 생각해 맹호부대로 파월을 자원했다. 월남 가는 수송선 속에서 죽음이 두려워 떨며 우는 전우들을 보며 ‘저 새끼들 왜 저러나?’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고 겁나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월남은 배고픈 군인들에게 약속의 땅이다. 전투수당이 나오고 고급 전투식량이 원 없이 나오는 서방정토다. 등 뜨시고 배부른데 울 일이 뭐 있나, 재수 없으면 죽으면 되는 거지. 당시 군의관이었던 나는 월남전 차출 안 되게 해달라고 밤낮으로 부처님에게 빌고 또 하나님에게 매달렸다. 오만이는 스스로 지원해서 갔다. 아마 너무 못 먹어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만이가 포항제철 근무 때는 바야흐로 노동자들이 민주화라는 이름을 빙자해 정치운동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던 때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다. 공장이 자리를 잡지도 못했는데 노동운동하면 나라 망한다고 생각해서 죽어라고 쇠만 만들었다. 쇳덩어리가 자동차 되고 유조선 되고 대포가 되어 나라가 부강해지면 그때 가난한 노동자는 저절로 배고픔에서 해방되고 인간 대접받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의 성격에 만일 포철 노조위원장에 당선 되었더라면 그곳은 소위 해방구가 되어 연일 파업과 노동요와 춤으로 지새우느라 쇳덩어리는커녕 젓가락 하나도 못 만들고 제철공장 문을 닫았을 것이다.
오만이는 죽어라 글을 써댄다. 그는 타고난 필력을 갖고 있다. 끝없는 호기심, 예리한 관찰력에다 뛰어난 기억력과 메모하는 습관들이 어우러져 때로는 남의 가슴을 뛰게 하고 때로는 울게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남들은 그가 이런 타고난 재주와 부지런함이 그의 문학을 이룬다고만 생각한다. 그의 글을 언뜻 보면 수구꼴통처럼 느껴진다. 그의 촌집에 1년 열두 달 태극기가 펄럭대는 모습을 보면 그는 요지부동의 우파로 보이지만 진정한 그의 속내는 좌파다. 조국이 부자 되고 나라가 강해져도 노동자의 인권이나 소득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고독한 늑대의 가슴 속에 흐르는 슬픔과 고독과 설움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쓴다.
글의 행간을 보면 '늙은 노동자의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 '흔들리지 않게'의 함성이 들린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힘차게 팔을 흔드는 그의 모습이 글의 뒷면에 보인다. 그의 부아가 치미는 속내가 문학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심신장애자 돌보기 봉사, 동해안 숲 청소, 못사는 나라 어린이에게 성금 보내기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가난한 자와 장애인을 향한 그의 애정을 보면 결코 보수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이 들어서도 배움을 좋아해 일어일문과를 졸업하고 사이버대학에서 독도에 대한 공부도 했으며 사회복지사, 한문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틈만 나면 글을 쓴다. 그는 뒷방의 늙은 노동자가 아니고 저녁놀을 붉게 밝히는 투지의 사나이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의 사나이다.
이제 빨갱이 화두가 풀렸다. 노동운동 대신에 쇠 만들던 그가 속으로는 저주하고 이를 갈던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지식인, 정치와 결탁한 자본가, 시민단체 만들어 모은 돈 착복하고 국회의원 되는 인간들, 하청업체 노동자를 착취하는 귀족 노조, 이들에 대항하고 싸우는 행동이 오만이의 글쓰기다. 그의 글쓰기는 음풍농월(吟風弄月)하고 재능을 뽐내는 행동이 아니요. 처절한 싸움이다. 투쟁, 투쟁 그의 투쟁에 큰 박수를 보낸다.
통나무집식당)
포항-영천 28번국도 안강 옥산서원 쪽으로 진입하면 왼편에 자옥산과 도덕산이 보입니다. 좌우 들판에 지금 모심기 준비하느라 논에 물을 가두고 있으며 백로가 개구리 잡느라 성큼성큼 걷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옥산서원(玉山書院) 옆에 `옥산서원 유물관`이 있는데, 국보 제322-1호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활자본으로 가장 오래된 보물 제524호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 외에 해동명적, 이언적 수필고본일괄 등의 보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전시관이 아니라 유물을 보관하는 곳이기에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옥산서원 앞에 자계천이 흐르고 큼지막한 이팝나무들에 꽃이 만개했습니다. 서원 내에는 한석봉,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명필가의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자계천 바위에 퇴계선생이 쓴 洗心臺(세심대)가 새겨져 있고, 개울 따라 천천히 600m정도 걸으면 보물 제413호 獨樂堂(독락당)이 있습니다. 독락당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선생이 낙향하여 기거하던 곳입니다. 여기에도 퇴계, 한석봉, 이산해 등의 편액을 볼 수 있으며 회재 선생의 보물급 장서들이 별도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독락당을 나와 옥산저수지 방향 좌측 100m지점에 태극기가 게양된 집에 저가 살고 있습니다. 다시 저수지 쪽으로 100m 왼쪽에 국보 제40호 정혜사지13층 석탑이 보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일반 석탑과는 모양이 다릅니다.
석탑 부근에 통나무집 식당이 있습니다. 닭, 오리백숙이 전문인데, 한 마리로 세 사람이 먹으면 딱 맞고 네 사람이 먹으면 이상하게도 남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옥산저수지를 포함하여 시골마을을 둘러보시면 반나절 소풍으로 좋으리라 추천합니다. 부득이 참석이 어려운분 들에게는 책을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성함(漢字)과 주소(도로명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책이 두꺼워(432p) 읽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는 분에게 무료로 드립니다.
독락당
오만이의 집(태극기가 펄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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