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생활/여행과 사진

단풍여행(2021년 11월 6일 -7일) -1

물배(mulbae) 2021. 11. 19. 13:50

단풍여행 1박 2일(2021년 11월 6일 -7일)
 
  이건 완전히 마지막 발악이다. 요즈음 부쩍 자주 만나는 4명이 단풍 여행을 가기로 했다. 첫날은 청송 주산지, 절골 그리고 주왕산을 거쳐 대구에 가서 친구 창곡의 집에서 자고 다음날은 창곡의 안내를 따르기로 했다.
주말이라 차가 밀릴 것을 감안하여 아침 일찍 출발(부산 친구 2명은 7시 출발, 나와 익환이는 언양에서 7시 40분 만나기로 약속)하여 언양을 거쳐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안개가 너무 짙어 可視距離가 짧아 운전이 불편한데도 차는 그다지 밀리지 않아 그런대로 빨리 갈 수 있었다. 주산지를 목적지로 네비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니 경주, 포항을 지나 地境里에서 달산, 옥계방면으로 시골 산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가는 도중 영덕 도천 숲도 보고, 옥계계곡, 청송 얼음골에 내려 풍경을 감상하고 주산지에 가니 입구부터 자동차의 행렬이 줄을 이어 주차할 장소가 없었다. 다행히 어느 민박집 앞 공간이 있어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서 주산지로 갔다.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붐벼도 가을의 주산지는 역시 절경이었다. 형형색색 단풍이 물들어 있는 저수지를 둘러싼 산을 배경으로 물 위에 떠 있는 떨어진 낙엽 속에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 외롭게 물속에 잠겨 있는 왕버들은 異色的인 풍경이었다. 주산지를 돌아 나와 청송사과와 송이버섯 등 청송특산물들을 파는 어느 음식점에서 파전과 사과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되돌아 나왔다. 절골 입구에 오니 다행히 막아놓았던 입구를 열어줘서 절골 탐방안내소까지 갈 수 있었다.
  먼저 다녀온 오만이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달 15일부터 내년 9월 15일까지 절골 탐방이 폐쇄된다고 하니 역시 우리에게는 좋은 곳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이 따르는 모양이다. 주왕산 절골, 明鏡止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울긋불긋 단풍과 주위의 異國的인 주왕산 특유의 바위산을 쳐다보며 걷는 대문다리까지 3.5km 계곡 길은 전혀 피곤함을 못 느낄 정도로 절경이었다. 절골을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친구가 소개한 달기약수터 동대구식당에 전화로 백숙 예약을 하니 주말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예약 불가란다. 포기하고 차가 너무 밀리니 절대로 가지 말라는 주왕산으로 가기로 했다.
  주왕산은 예상대로 입구부터 차가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오는 차도 있어 조금 기다리니 서서히 움직였고 주차장에서 조금 떨어진 주왕산 통나무 팬션 앞에 주차시킨 후 백숙과 도토리묵을 시켜 늦은 점심을 먹고 차는 그대로 주차해 놓고 걸어서 주왕산으로 갔다. 여기도 인산인해, 무슨 사람들이 어디에서 이렇게 많이 몰려 왔을까? 길옆의 단풍나무에는 단풍잎이 너무 붉었다. 지금 이곳은 단풍이 절정이다. 주왕산 대전사에서 폭포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내려왔다. 오늘의 일정은 차질 없이 마쳤다. 단풍과 가을 산구경도 원 없이 했다. 모두들 만족스러워 하며 대구로 왔다. 가을 해는 짧다. 대구에 오니 밤, 친구 창곡 집 부근 채온당이라는 식당에서 냉면과 쭈꾸미 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창곡의 집으로 갔다.
  약속시간(21시 이전)에 맞춰 창곡의 아파트에 도착하니 출타(百壽를 누리고 계시는 모친을 돌보느라 일주일에 2일을 모친과 함께 생활하는 孝子)에서 돌아오는 창곡과 함께 아파트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는 집에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장 동석이 우리를 반긴다. 83평이라는 넓은 아파트에서 우리 늙은 친구 6명이 보낸 밤 시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구를 떠나 서울대에서 학업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LA에서 산지 40년이 되었다는 동석이가 사왔다는 술(발렌타인 30년산)을 마시기 시작한 술판에서의 끝없는 땃다붓다는 약속시간(밤 11시)을 훌쩍 넘겨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옛날 어릴 적 학창시절(초,중,고)의 무용담에서부터 살아온 이야기, 同期들의 近況과 빠질 수 없는 건강 이야기로 시작하여 창곡의 하모니카 연주, 국선에 특선을 한 창곡의 글씨, 고인이 된 김 황희 여사의 시화, 소장하고 있는 서예작품과 그림이야기(이 석조 화백의 그림과 순애보, 천재화가 전 영발 화백)를 대화의 장르를 넘나들다가 창곡이 모나코 니스해변에서 사왔다는 독한 술 압상트(빈 센트 고흐가 이 술을 먹고 귀를 잘랐다고 함)를 마시면서부터 술 이야기로 비약을 거듭하다가 마지막으로 맥주로 끝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처방 받은 수면제 한 알을 먹고 뻗었다.
아침에 예정보다 늦게 기상하여 짐을 챙겨 차에 싣고 창곡의 가이딩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먼저 팔공산삼거리식당에서 능이버섯 순두부찌개로 아침을 먹고동화사로 향했다. 가는 도중 팔공산 도장골의 양석(男根石)을 모아 놓은 노천 전시장에 들렀다. 크고 우뚝 솟은 많은 양석 들 -- 돌∕그냥 돌입니다∕산길에 강변에 그리고 할 일없이 철썩거리는 바닷가에∕ 그저 그런 곳에 뒹굴고 있는 ∕하나의 돌이지요 -- 중략∕그냥 돌일 뿐입니다.
  팔공산 동화사, 차를 주차시킨 후 먼저 들린 곳은 삼층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동화사 비로암이었다. 비로암에서 나와 동화사 경내를 둘러보고 노태우 대통령 때 세운 통일약사여래대불도 보고 노태우 생가로 갔다. 두 대의 차가 교차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좁은 진입로를 따라간 여느 대통령 생가답지 않은 초라한 생가를 보니 功過를 따지기 이전에 榮辱의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적폐청산, 과연 무엇을 위함일까? 孟子의 “人必自侮然後人侮之 家必自毁而後人毁之 國必自伐而後人伐之”라는 말이 생각났다. 돌에 새겨진 업적 중 적성국 중, 쏘 포함 34개국 국교수교 등은 가장 큰 업적이라는 국상이의 말에 수긍하면서---
  팔공산 외고집식당에서 능이오리백숙으로 점심(창곡이 점심 값을 지불해서 고맙고 미안했다)을 먹고 파계사로 갔다. 파계사 입구까지 연결된 팔공산순환도로 길가에 심어진 단풍나무가로수의 단풍이 너무 아름다웠다. 언제 봐도 아늑하고 고즈넉한 파계사는 영조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있는 절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원통전, 적묵당, 진동루 등을 보고 불로동 봉무 고분공원을 산책하고 불로시장 누드닭발집에서 대구 친구 임 성규와 한 창규 합석하여 누드닭발과 술 파티로 대구행사 끝, 운전 담당 정호, 물심양면으로 수고해준 창곡에게 너무 많은 폐를 끼친 것 같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꼬.
 

주산지

주왕산 절골계곡

주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