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생활/山 行

영축산 등산(2022년 3월 15일)

물배(mulbae) 2022. 3. 16. 17:48

! 영남알프스 영축산(2022315)

 

  오랫동안의 가뭄으로 너무나 건조하여 강원도를 비롯한 여러 곳의 산불로 온통 난리를 치룬 후, 그래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오랜만에 단비가 조금 내린 화창한 봄날 아침에 문득 떠오른 옛 추억(2014/03/03) 하나, 영축산 정상석 바로 밑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키 작은 잡목 나뭇가지에 맺혀있던 눈결정모양의 새하얀 상고대(雪花)와 하산 길에 들린 山寺(通道寺)에 핀 紅梅影閣 뜰에 핀 자장매(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싱싱했다)의 화려하던 모습이 너무나 대비되어 山頂에는 雪花, 山寺에는 紅梅라고 블로그에 올린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섰다.

  신평터미널에서 영축산등산로 입구인 지산리로 가는 하북1번 마을버스(매시 20분 출발)를 타서 종점에 내려 境內 出入禁止를 위해 철망으로 막아 자물쇠로 채워놓은 출입문 옆에 성질 급한 사람이 뚫어놓은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바로 옆에 있는 축서암(鷲捿庵)에 들러 활짝 핀 枯木梅와 갓 피어나고 있는 예쁘고 요염한 목련꽃봉오리를 出寫한 후 본격적으로 登山을 시작했다. 몸 상태를 봐서 자신이 없으면 둘레길을 가기로 하고 등산로안내판(축서암사거리) 앞에서 망설이다가 올라갈 욕심이 생겨 정상까지 오르기로 했다.

  시원찮은 무릎을 생각해서 악착같이 편하고 좋은 길만 따라가기로 마음먹고 애써 지름길(등산로)은 외면한다. 그래도 두세 번쯤은 유혹에 넘어갔지만 악착같이 임도를 고집하여 굽이굽이 구불구불 쉬엄쉬엄 취서산장에 도착했다. 지산마을이나 지내마을 코스로 오를 때나 다른 코스로 올랐다가 지산마을로 내려갈 때마다 들르곤 했던 취서산장의 젊은 부부(내 눈에는 아직 젊다)와 눈시울을 붉히며 회상하며 슬퍼하는 옛날에 키우던 개(나의 블로그 어딘가에 사진으로 남아있다)이야기, 이야기, 野生花이야기등을 주고받으며 오천 원하는 라면 한 그릇(옛날에는 종종 막걸리)을 주문하였다. 이제는 낡아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 식탁 위에 주인아저씨가 직접 짓고 썼다는 漢詩 하나를 소개한다. 萬事唯宜一笑休 蒼蒼在上豈容求(세상만사 오로지 한 번 웃고 말 것을/저 푸른 창공이 어찌 바란다고 다 주겠는가?)

  산장에서 정상까지는 0.8km, 이제부터 본격적인 등산이다. 올라가다가 마주치는 거대한 암봉, 군데군데의 전망바위에서 영축능선을 조망하고 질퍽질퍽한 미끄러운 응달길을 겨우 올라 드디어 나타나는 영축산 정상, 말도 많고 거부감도 심했던 거대한 頂上石을 보고 있노라면 조그마한 돌덩이에 정상 표시만 되어있던 옛날의 표지석이 그리워진다. 그 때는 이 산을 영취산 또는 취서산으로 불렀었지. 정상에는 몇몇 등산객들이 보이고 연인들끼리는 서로서로 인증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나도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정상을 올랐을 때의 기쁨보다 정상에 올라가는 과정 즉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높던 낮던 산은 그냥 산일뿐인데 산 속에 머물며 산길을 걷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산을 가야하는데도 왜 사람들은 정상에 올라야만 만족을 하는 것일까? 더 높이 오를수록 내려오는 길이 더 힘이 들고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頂上에 머무는 것은 순간뿐 잠시 머물다 반드시 내려와야만 하는 것이 必然인데도 왜 사람들은 頂上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어디로 하산할까 망설이다가 신불재에서 가천으로 하산하가로 하였다. 여기에서 신불산까지 2.2km, 신불재에서 불승사까지 3.3km, 불승사에서 용암마을까지 2km, 한참 멀다. 그늘이 없어 아쉽지만 영축능선을 따라가는 신불평원은 걸을만하다. 단조성 평원 넘어 재약산도 바라보고, 새로 단장한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도 좋고 앞으로는 신불산과 천황산도 보이고 뒤돌아보면 함박등과 채이등, 죽바우등, 시살등, 오룡산이 연결되는 영축능선도 보인다.

  신불재에서 가천까지 내려가는 하산길이 문제다. 아무리 혼자서 중얼거려도 무릎도 시큰거리고 얕잡아보고 신고 간 경등산화 때문에 발가락도 아프다. 폭우로 드러난 돌부리와 돌계단, 경사가 심한 미끄러운 下山길은 정말 힘이 들었다. 아마도 모든 인생사가 마찬가지이겠지만 내리막도 한참 끝자락에 와 있는 나에게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훨씬 힘이 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그래도 들머리 축서암에서 찍은 매화와 목련봉오리, 날머리 가천마을 어느 집 담장의 능수매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축서암

축서암 요사체 앞

 

취서산장

영남알프스하늘억새길

신불재

신불산

가천리(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