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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경주 역사문화탐방 스템프 투어(2025년 8월 6일)

물배(mulbae) 2025. 8. 15. 22:51

세 번째 경주 역사문화탐방 스템프 투어 -1(202586)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날이면 젊을 때처럼 바닷가나 산으로 바캉스를 갈 수도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찾곤 했던 경주지만 그냥 목적 없이 다니는 것보다는 그래도 목표를 갖고 다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세 번째 역사문화탐방 스탬프 투어를 시작한다.

 먼저 터미널에서 가까운 김유신장군묘와 무열왕릉, 그리고 왕릉을 보기로 한 김에 원성왕릉을 다녀왔다. 늘 하든대로 노포동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를 타서 경주터미널에서 내려 서천교를 건너 김유신장군묘로 갔다.

 사적 21호인 김유신장군묘는 삼국통일의 중심적 역할을 한 태대각간 김 유신(595 -673) 장군 무덤으로 원성왕릉과 마찬가지로 봉분 둘레에는 十二支神像을 새긴 버팀돌을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고 흥덕왕 때 흥무대왕으로 추봉되 봉분도 어느 왕릉 못지않다. 장군묘를 둘러보고 되돌아 나와 오래된 벚꽃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무열왕릉으로 간다.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싱싱하게 자라 바람에 일렁이는 넓은 들판의 벼를 보며 풍요를 느끼고 수경재배로 딸기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를 쳐다보며 한참을 걸으니 사적 20호인 태종무열왕릉이 나온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안온하게 자리 잡은 왕릉과 碑身은 없고 몸통을 받혔던 龜趺(거북모양의 받침돌) 위에 머릿돌(이수)가 얹혀있는 국보 25호인 武烈王陵碑를 구경한 후 왕릉 건너편에 있는 김인문(무열왕의 아들)의 묘로 간다.

 지난번에는 출입불가였던 김인문묘와 보물인 경주 서악동 귀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은 일찍이 당나라에 숙위(속국 또는 주변나라의 왕족들이 볼모로 가서 머물던 일)하면서 신라와 당의 관계유지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삼국통일의 숨은 주역을 했던 인물로서 당나라에서 관직을 지내다가 죽자 당 고종이 시신을 신라에 보내 장사지내게 하였다고 적혀있었다. 무덤 주위의 배롱나무 꽃과 벌초를 한 봉분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김인문 묘를 보고 무열왕릉정류장에서 300-1번 버스를 타서 중앙시장 앞에서 내려 600번 버스로 환승하여 괘릉입구에서 내려 원성왕릉(괘릉)에 갔다. 불국사역에서 울산방면으로 가다가 影池입구를 조금 지나면 나오는 자그마한 야산 자락에 있는 원성왕릉은 주위가 온통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십이지신상의 봉분과 돌 난관 울타리로 되어 있으며 다른 왕릉과는 다르게 입구에 마주보고 서있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석물(좌표석, 문인석, 무인석, 돌사자석상)이 특징이다.

 특히 아라비아인 모습인 무인석은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흥덕왕릉의 무인석과 흡사하다. 그러고 보니 신라 말기 38대 원성왕과 그의 손자인 42대 흥덕왕(원성왕의 손자이며 41대 헌덕왕의 아우)의 왕릉은 닮은 점이 너무 많다, 이상하게도 흥덕왕릉 주위의 굽은 소나무와 원성왕릉 주위의 굽은 소나무가 너무나 흡사하다.

 

 

김유신묘(사적 21호)

무열왕릉 가는 길

무열왕릉(사적 20호)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서악동 귀부(김인문 묘비 받침돌)

김인문묘

굽은 소나무(원성왕릉 입구)

원성왕릉

무인석

문인석

무인석

문인석

돌사자 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