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나는 요즈음 부쩍 기억력이 떨어졌다.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나도 총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영어단어에다, 어려운 수학공식, 국사시간에 들은 수많은 사실(史實)과 연대(年代),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시나 시조, 공약3장을 포함한 독립선언서, 특히 내가 좋아한 고문(古文)에 나오는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송강가사(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장진주사 등)는 물론 외울 필요도 없는 반야심경(믿는 종교가 없음)이나 혁명공약, 국민교육헌장, 군인의 길, 불침번수칙 등등을 앵무새처럼 곧잘 줄줄 외우곤 했었다. 그런 것이 그때는 기억력이 좋다는 것으로 느껴져 자랑으로 여겼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무작정 외운 이런 단편적인 지식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삶에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씁쓸함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필요 없는 지식이라도 몇 번만 읽고 들으면 자동적으로 외워지던 그때가 그립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잊어서는 안 될 일을 명심한다고 몇 번이나 반복하여 기억하고, 심지어 기록까지 하였는데도 며칠 후면 적었다는 사실까지도 까맣게 잊어먹었을 때, 특히 잊지 말아야할 사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심지어 옛날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이름까지도 까마득히 잊어버려 우연히 만나 당황스러울 때, 더욱 황당한 것은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지갑과 열쇠, 휴대전화 세 가지 중 한 가지는 꼭 빠뜨리고 집을 나섰다가 되돌아 갈 때, 신문을 뒤적이다 옛날에 알고 있던 어휘나 사실(事實)들이 처음 대하는 듯 생소한 느낌을 받을 때 등등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즈음은 대화 속에 “그게, 뭐더라. 왜 그때가 언제더라, 거 있잖아. 그게 누구더라, 그 머라 카더라, 머시기가, 거시기가 어쩌고저쩌고…”가 부쩍 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 자신이 서글퍼진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건망증이 심각한 단계까지 가지는 않았고, 건망증과 치매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으며, 이것저것 열심히 책도 읽고, 머리를 쓰는 놀이(고스톱, 포커게임 등)도 하고, 많이 걷고, 걸으면서 생각하고, 사소한 것도 반드시 메모하는 습관도 길러, 기억력의 퇴화 방지에 노력하고는 있지만 개선의 여지는커녕 기억력이 점점 더 나빠져 가고만 있다. 하기야 제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가진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종종 자기 딴에는 정확하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나중에는 엉터리로 판명되는 것을 볼 때,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사람은 잊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만약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일생동안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머리가 복잡해서 하루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忘却(망각)이라는 편리한 방법으로 생각을 단순화시켜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대학을 함께 입학하여 함께 졸업한 친구(정원이 6명)들을 만났다. 화제는 주로 학교 다닐 때 일어났던 이야기였고, 왜 그렇게도 그 친구들은 하나같이 기억력이 좋은지, 나만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날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재생해 내며 대화가 이어졌고, 그 시절의 우리에게는 익숙했으나 지금은 시대에 맞지 않는 옛날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억이란 그 이전에 경험한 것을 어떤 형태로 의식 속에 간직하였다가 나중에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을 말하며, ‘돌아온 진돗개 백구(白駒)’처럼 그것이 본능적이던 유전적이던 어떤 분야에서는 동물의 기억력이 인간의 기억력보다 뛰어난 경우를 종종 볼 수도 있지만, 우리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것도 사람에 따라, 남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특히 부부싸움을 할 때나, 좋지 않은 감정으로 말다툼할 때, 나 자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사소한 행동이나 무심코 지껄인 말 한마디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것을 볼 때, 사람의 기억이란 현재 체험하고 있는 전부가 기억 속에 남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인상적인 것만이 기억되고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만 기억력이 발달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하기야 하루를 살아가는데도 행렬지어 지나가는 무수한 상념(想念) 속에 감정의 기복(起伏)이 이렇게 막심한데, 한 달을 살고, 1년을 살고, 일생을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정신작용을 어떻게 모두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많던 즐겁던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의미 없이 지껄인 남편의 말 한마디가 자기에게는 상처로 남아 의식 저변에 깔려 있다가, 좋지 않은 순간이 생기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의식의 표면에 떠올라 갑자기 감정이 표출되는 것이 여자의 속성이겠지.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맞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니, 사람의 기억력이란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기억의 한계도 있어 전적으로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기억이란 자기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을 집약(集約)하여 기억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니 사람의 대뇌(大腦) 속에는 물경 1백 40억 개나 되는 신경세포가 몰려 있다. 운동, 언어, 지각, 미각이나 청각 등의 감각, 추리나 판단, 오욕칠정(五慾七情) 등의 감정이 감정, 기억 등을 담당하는 분업화된 세포의 조직 속에서 이루어지니 기억과 망각, 예지와 욕망, 감정의 기복 등의 상반되는 모순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많으니 대뇌조직 속에 포함된 내용이 많을 테고 기억하고 있는 내용 또한 많아질 텐데도 나이든 사람이 점점 치매가 되어가는 것을 볼 때, 사람의 기억세포는 젊을 때처럼 항상 재생되는 것이 아니며, 늙으면 퇴화되고 세포수가 줄어듦은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리라. 어차피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기억하는 것은 육신을 피로하게 하고 너무 많은 망각 또한 정신을 황량하게 만드니 기억하고 잊는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잊으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꽃 따로 잎 따로
내가 세(貰)들어 살고 있는 이 집 정원에는 이름 모를 한 포기 꽃이 있습니다. 지난 가을 우리 가족이 이 집으로 이사를 한 지 약 4개월쯤 지났을까한 비 온 뒤의 어느 상쾌한 초가을 아침, 정원의 한 귀퉁이에 느닷없이 나타난 기다란 꽃대 위에 현란하게 피어있는 세 송이의 꽃을 발견하곤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 주위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당연히 있어야할 잎사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잎사귀가 없는 꽃이라니!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허허한 모래벌판 위에 드문드문 꽂아 놓은 세 송이 조화(造花)마냥, 땅의 요정이 부린 요술치고는 너무나도 기묘한 정경이었습니다.
꽃 치고 아름답지 아니한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자세하게 살펴보니 이 꽃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길고 굵고 싱싱한 꽃대 위에 무리지어 나온 백합꽃잎을 닮은 선홍빛 붉은 꽃잎은 마치 펼쳐진 공작의 날개처럼 현란하였으며, 꽃잎 밖으로 튀어나온 여섯 개의 수술은 마치 화염 속에 이글거리는 불꽃을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꽃이 시든 지도, 꽃의 아름다움을 잊은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원산(遠山)에 잔설(殘雪)만이 희끗희끗 남은 금년 초 봄, 작년에 꽃을 피웠던 그 자리에 난(蘭)잎처럼 생긴 파란 잎사귀가 돋아났습니다. 얼어붙었던 지표를 뚫고 나오는 이 놀랍고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사를 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핀 바로 그 아름다운 꽃이 생각났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잎은 초봄에 인고(忍苦)를 이기고 돋아나서 여름의 폭염(暴炎)에 시들어버리고, 신선한 초가을 양광(陽光)에 시든 꽃잎이 환골 탈퇴하여,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돋아난다는 사실을.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고 기온이 변해도 튼튼한 뿌리는 언제나 땅 속에서 살아 숨 쉬며 건재(健在)하여, 잎과 꽃을 번갈아가며 땅 위로 내보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이 부리는 조화는 정말 변화무쌍(變化無雙)하고 무궁무진(無窮無盡)합니다. 꽃은 사람이 아름답다 해서 피는 것이 아니라 필 때가 되어 핀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지만, 꽃을 보는 것은 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잎을 포함한 꽃나무 전체를 보는 것일 진데, 잎 먼저 보고, 떨어진 그 잎사귀를 오래오래 기억해 두었다가, 꽃이 필 때 꽃과 잎을 함께 생각해 달라는 이 이름 모를 꽃의 심술에야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어차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명화(名花)는 무실(無實)하고 채운(彩雲)은 이산(易散)이라고,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언젠가는 시들어버리고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으며 무지개 색 아름다운 구름은 쉽게 흩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 인간에게 잎을 볼 때는 꽃을 상상하며, 꽃을 볼 때는 잎을 기억하라는 경종이 아닐까 생각한다.
* 나중에 이 꽃 이름이 꽃무릇(다른 이름으로 석산,石蒜)이라는 것을 알았고, 백합목, 수선화과의 다년생 꽃으로, 전남 함평 용천사, 영광 불갑사, 전북 고창 선운사 주위에 9월 중순에 가면 눈부신 꽃무릇, 꽃동산을 볼 수 있다.
** 꽃과 잎이 따로 피는 꽃은 상사화(相思花 :꽃과 잎이 서로를 만나지 못해 서로를 그리워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도 있으며, 꽃무릇과 다른 점은 꽃무릇은 9, 10월에 꽃이 피나 상사화는 8월에 피며, 꽃무릇은 선홍색이고, 상사화는 분홍색 또는 연한 자주색의 꽃이 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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