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배의 교단수필/정년기념 수상집

현대물리학과 철학

물배(mulbae) 2008. 8. 1. 15:48
 

                                         현대물리학과 철학

 자연법칙과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는 물리학은 Newton역학으로 대변되는 고전물리와 상대론과 양자역학으로 상징되는 현대 물리로 나누어진다. 17세기부터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하여 발전되어 와서 Newton시대에 완성된 고전역학은 19세기 말까지는 거시세계의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20세기 초에 발견된 X선과 방사선을 이용한 새로운 실험방법으로 광전효과와 Comton효과, 전자의 회절현상 등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빛과 물질의 이중성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고, 원자핵과 전자가 발견 되어 원자의 구조나 수소원자의 양자화 등 미시세계의 실험결과를 설명하기에는 고전역학의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위한 대안으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체계를 도입하게 되었다. 덧붙여 Einstein으로 상징되는 상대성이론은 빛의 속도와 가깝게 빠른 속도(실제로 이런 일은 거의 없다.)로 움직일 때의 시공간의 본질을 다루는 영역이며, 양자역학은 원자, 분자, 소립자등 미시세계를 다루는 영역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생활(거시세계)에서는 고전역학이 통용됨을 알아야 하겠다.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차이점은 고전역학은 물체의 운동이나 역학적 에너지 등과같이 현재의 운동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다음 순간에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deterministic)입장인 반면, 양자역학은 전자의 위치와 같이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더라도 다음 순간에 일어나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단지 그 전자가 그 곳에 있을 가능성만 알 수 있다는 확률론적(probabilistic)입장을 가지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고전역학은 모든 물리적인 현상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나타난다는 인과법칙을 따르고 우연성을 배제하는 반면, 양자역학은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다음 순간에는 전혀 다른 현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우연성에 따르며, 다만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자연현상을 명확하게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목적인 물리학에서도 현대 물리는 아주 깊게 파고들면 철학이 되고, 흔히 현대물리학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철학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으로 볼 때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세계(거시세계)에서는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사소한 것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특별한 세계(미시세계: 정신세계)에서는 아주 크게 부각되어 어느 한 가지만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확정성(uncertainty)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시간과 공간, 그 차원의 부합

 차원(dimension)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처지 또는 어떤 생각이나 의견 따위를 이루는 사상이나 학식의 수준을 나타내는 말로 흔히 잘 쓰는 “나는 너하고는 차원이 다르다.”(이 말은 내가 너보다 차원이 높다는 뜻이며, 내가 차원이 낮을 때는 이런 말을 사용하는 바보는 없음)라고 할 때와 같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보통명사이며, 두 번째는 수학에서 사용하는 수학적용어로, 기하학적 도형이나 공간 따위의 한 점의 위치를 나타낼 때 필요한 실수의 최소 개수를 나타내는 말로서 직선은 1차원, 평면은 2차원, 입체(공간)는 3차원…등에 사용되는 말이며, 세 번째는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질량, 길이, 시간과 같이 물리량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 또는 물리량의 기본단위와 유도단위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서, 지금부터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차원의 해석이다.       

 “우리는 3차원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 말의 뜻은 위에서 말한 수학적 의미의 차원으로 우리가 숨 쉬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 넓은 공간은 입체이니, 우리는 3차원인 공간속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또 이런 공간은 우리들의 감각기관으로 우리의 현재위치를 知覺(지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리저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넘어지지 않고 평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空間知覺(공간지각)은 사람의 內耳(귀속)에 있는 세반고리관이라는 세 개의 고리 모양의 기관이 각각 세 개의 축(x,y,z)으로 이루어져 있어 3차원인 공간을 지각하여, 평형감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단순히 기하학적인 해석이고 물리에서 말하는 차원과는 그 뜻이 다르다. 그러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차원이란 무엇일까? 또, 우리는 과연 3차원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물리학에서 4차원이라 함은 3차원인 공간에 시간이라는 한 개의 차원을 더한 것을 4차원이라고 하며 ‘4차원의 세계’라 하면 무슨 공상과학만화나 SF영화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불가사의한 세계를 생각하지만 그것은 소설 속의 허구이며 과학적인 해석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4차원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불가사의한 세계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의 비밀은 시간이라는 차원 때문이다. 즉 시간은 공간과는 달리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느낄 수 없고, 오직 大腦(대뇌)의 認知(인지)작용으로만 느낄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말은 단순한 기하학적으로는 맞는 말일지 몰라도 물리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몇 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길을 가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던가, 약속에 의한 만남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우연히 만났다 혹은 어디에서 누구와 만났다고 표현하지만 물리적으로 따지면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고 만날 수 있는 조건 즉 그 시각과 그 장소가 일치하여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는 한, 4차원인 시간과 공간의 일치 즉 차원이 符合(부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그래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時空(시공)을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표현(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즐겨 사용하나 보다.

2. 시간이라는 非可逆性(비가역성)

 과학용어에 可逆變化(가역변화), 非可逆變化(비가역변화)라는 것이 있다. 엄밀한 의미로는 가역변화는 없지만(자연현상 전부가 비가역변화), 일반적으로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시계추의 왕복운동 등 원래 위치로 되돌아오는 것을 가역변화라 하고 엎질러진 물, 깨진 그릇, 기체의 확산, 열의 이동 등 한쪽으로만 이동하여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비가역변화라고 한다. 그러면 시간은 무엇일까? 시간은 시각(시점)과 시각(시점) 사이의 간격을 말하며, 시간은 결코 거꾸로 흘러가지 않고,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외길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시간의 성질은 공간과는 크게 다르며, 공간은 자유로이 왕복하지만 시간은 왕복불가능하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커녕 현재에 머물 수도 없다. 이런 의미로 시간은 비가역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시간이 가역변화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먼저 因果律(인과율)의 문제, 즉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는 혼돈이 일어날 것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아들이 되고 할아버지가 손자로, 태어나서 잘 자라던 어린이가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이한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경우라도 결과가 원인보다 먼저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1905년 아인스타인이라는 젊은 과학자가 특수상대성원리라는 것을 발표하였고, 여기에서 아무리 빠른 물체라 할지라도 광속보다 더 빠를 수는 없다는 가설(광속도불변의 원리)을 설정함으로서 인과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상대성이론에는 두 가지(일반, 특수)가 있고, 그 중 특수상대성이론을 조금 설명하자면, 절대적으로 불변인 시간과 공간(예를 들면 1m라는 길이, 10분이라는 시간은 어떤 장소나 어떤 경우라도 변하지 않고 이것을 절대공간, 절대시간이라 함)도 광속에 가까울 정도의 매우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관측자에게는 상대적이며 길이(공간)는 축소(Lorentz construction)되고, 시간은 지연(time delay)된다는 것이며, 만약 광속도로 움직이는 특수한 경우(실제적으로는 없음)에서도 시간은 한없이 지연되어 머무를 수는 있지만 광속도불변의법칙을 가정함으로서 시간이 逆(역)으로 흘러갈 수는 없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현상은 관측자가 등속도 운동을 하는 특수한 경우(특수상대성이론)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거시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므로, 시간은 나를 위해 머물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3. 사람의 마음이라는 이중성

 빛의 이중성이란 빛이 연속적인 파동으로서 공간에 퍼져나가는 것(파동성)과 동시에 입자(광자)로서 불연속적으로 진행하는 알갱이(입자성)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며,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종종 사람의 마음에 비유한다. 빛이 파동이라면 빛도 소리와 같이 주위 공간을 퍼져 나감을 의미하며, 빛이 입자라면 빛을 상자에 가두어 둘 수 있음(위치를 알 수 있음)을 의미하니,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느 순간 빛이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동시에 멀리 퍼져나가고 없다는 모순이 생기고, 이런 모순은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도입으로 해결되었고, 현재는 빛은 거시적으로는 전자기파(파동)로서 행동하지만 원자와 같은 미시세계에서는 광자(입자)라는 입자의 성질을 가진 알갱이로 본다는 것이 오늘날의 이중성에 대한 해석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거시세계를 다루는 고전역학(Newton역학)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현상도, 양자역학이 다루는 미시세계의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볼 때, 현대물리학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철학과 맥이 통한다. 물리에서는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은 이중적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일어날 때를 생각해보자. 지금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과 5분만 더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중성)을 가졌다고 해서, 자는 것과 일어나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미련(좀 더 잤으면, 좀 더 일찍 일어날 걸)이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이중적인가는 ‘지킬 박사와 하이든 씨’(영국의 스티븐슨이 쓴 괴기소설)를 읽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학식이 높고 자비심이 많은 지킬 박사도 비록 약물 복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악성을 지닌 추악한 하이드로 변신할 수 있고, 점차 악이 선을 이겨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지킬 박사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물리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인간은 누구나 지킬적 인성과 하이드적 인성의 양면성(이중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100%의 지킬 박사나 100%의 하이드 씨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떤 물리학자는 “신도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4. 정확하다는 것, 불확정성원리

 원자핵 주위를 빛의 속도와 비슷하게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전자를 우리는 볼 수 있을까? 또는 이러한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No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물체에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시세포를 거쳐 뇌에 전달되는 것이고,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 눈은 현재를 보는 것 같지만 빛의 속도와 시세포의 처리 속도(빛이 눈에서 뇌까지 전달될 동안 전자는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움직임)에 의해 언제나 과거를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자와 같이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를 보게 될 때, 그 물체의 현재 위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위치를 보는 것이고, 그 물체의 범위(전자운)는 측정할 수는 있어도 그 물체의 위치를 확정할 수는 없다. 이는 전자와 같은 물질입자도 입자로서의 성질도 가지지만 파동적인 성질도 가지며 이 상반된 두 가지 성질이 서로 제약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과학자 Heisenberg는 1913년 不確定性原理(불확정성원리)라는 것을 발표했고, 이어서 같은 독일의 Bohr도 이 원리를 도입해서 微視世界(미시세계)에서는 相補性原理(상보성원리)가 성립한다는 주석을 달았다. 不確定性原理란 두 가지의 相反(상반)된 두 물리량(예를 들면, 위치나 운동량, 에너지와 시간 등)을 동시에 무제한으로 정밀하게 측정할 수 없으며 그 중 하나를 정밀하게 관측하면 다른 하나는 필연적으로 오차가 따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불확정성원리나 상보성원리는 고전역학이 지배하는 일상생활(거시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묘한 사람의 마음 같은 양자세계(미시세계)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인생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수학과 자연과학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가치와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으나 “사람의 마음”을 구태여 정의하자면 불확정성원리에 따른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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