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배의 교단수필/정년기념 수상집

월급봉투-가불과 삥땅

물배(mulbae) 2008. 9. 23. 09:04

                                  월급봉투(가불과 삥땅)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 일일이 손으로 적은 월급명세서가 적혀있는 누런 봉투에 고액권이 나오기 전의 현찰(지폐, 종이 돈)을 넣어 부피가 제법 두툼한 월급봉투를 받던 시절의 이야기다.

 “가불하는 재미로 출근을 하다가/ 월급날은 남몰래 쓸쓸해진다./ 이것저것 제하면 남는 건 남는 건 빈 봉투/ 한숨으로 봉투 속을 채워나 볼까./ 외상술을 마시면서 큰소리치고/ 월급날은 혼자서 가슴을 친다./ 요리조리 빼앗기면 남는 건 남는 건 빈 봉투/ 어떡하면 집사람을 위로해 줄까.”

  월급쟁이의 애환을 노래한 최 희준의 ‘월급봉투’라는 노래의 가사다. 그러나 나의 기억으로는 웬만큼 술을 좋아하는 술꾼이라도 월급을 가불하여 술을 마시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생각된다. 그 대신 한 달간 밀린 외상술값을 갚으려고 마누라 모르게 삥땅(속어,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할 돈의 일부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을 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몇 몇 사람은 급여를 담당하는 직원과 짜고, 여분의 월급봉투를 하나 더 구해서 직원의 필체로 가짜명세서를 만들어 월급과 명세서를 일일이 꼼꼼하게 대조하는 알뜰한 마누라라도 감쪽같이 속아 넘겼다는 무용담에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그런 방법으로 잘 나가다가도 어줍지 않은 일로 들통이 나서 곤욕을 치루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 시절에는 삥땅이라는 정체불명의 말이 종종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시절이었다. 특히 버스 안내양의 삥땅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고, 기숙사에서 외출할 때, 알몸 수색을 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인권문제가 간혹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한 가난한 시절이었다.

 이야기가 곁가지로 흘러갔지만 월급 삥땅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한다. 나와 친한 어떤 간 큰 친구는 아예 삥땅이 아니라 공갈, 협박으로 외상술값을 마련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외상값을 한 3개월 미루어 두었다가 보너스(그 때 처음으로 상여금이 3개월 마다 나왔음)가 나오는 월급날 정기적으로 나오는 월급은 남겨두고 상여금만 모두를 떼어 그 동안 밀린 외상값을 모두 갚는 것이었다. 가불도 외상값도 전혀 없는 나와 같은 마음 약한 소시민은, 월급날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 마누라에게 한 달에 한번씩 만이라도 큰소리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서, 발걸음도 가볍게 퇴근을 하겠지만 평소에 지은 죄가 많은 이 친구는 이 날이 가장 괴로운 날이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하면 방법이 있다고 큰소리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들은 많이 웃었다.      

 방법 하나, 상여금이 나오는 월급날, 통금(통행금지 시간 밤 12시) 직전까지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마누라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누라가 잠든 시간에 맞추어 몰래 들어가 상여금을 제한 봉투 속에 미리 준비한 장문의 편지를 넣은 월급봉투를 방구석에 몰래 두고 마누라가 깨기 전 새벽 일찍 출근한단다. 이 때 편지의 내용이 얼마나 마누라의 심금을 울리느냐가 성공의 지름길이며 그 내용은 잘은 몰라도 아마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마누라에게”로 시작하여 구구절절 내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를 설명하고, 그 동안 아내를 만나 행복했던 순간들을 나열하고, 상여금을 떼어 먹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편지 속에 적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 풀어지면 일주일만 잔소리를 듣고 버티면 해결된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무척 재미있어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또 다시 외상값은 늘어날 것이고 한 번 써 먹은 방법을 다시 쓰면 약효가 없을 것이니, 그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그와 비슷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단다.

 방법 둘, 이 방법은 시간이 좀 걸리는 방법이니 장기계획을 세워야 하는 방법이란다. 상여금이 나오기 한 달 전부터 일부러 집에 늦게 가기, 어쩌다가 집에 일찍 들어가면 무조건 성부터 내기,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기, 괜히 반찬 투정하기, ‘그 놈의 돈이 무엇인지’ 등등 혼자 궁시렁 궁시렁 거리기 등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미리 충격을 최소화 한 다음, 월급날 이실직고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패할 확률이 크며 잘 못하면 부부사이가 악화될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항의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들은 성공할 확률이 높고 부부사이의 금이 가지 않는 방법을 의논하게 되었고, 만원 버스에서 월급을 소매치기 당했다고 거짓말하기, 형편이 딱한 친구를 도와 줬다는 거짓말하기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그렇게 써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최후의 방법, 그래서 의논 끝에 비교적 성공할 확률도 높고, 위험부담도 적은 마지막 방법은 마누라의 모성애를 자극하기였다. 월급날 술을 먹고 늦게 들어가는 것은 필수 조건이고, 들어가자마자 크게 한숨을 쉬며 심각한 목소리로 넋두리하기. “내가 죽어야지. 술만 마시지 않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걸. 술 먹은 내가 죽일 놈이지. 내가 이렇게 살아서 무엇을 하겠노. 나는 정말로 한심한 인간이야. 등등” 죽는다는 암시를 은근히 내비춰, 까짓것 남편 잃는 것 보다야 돈 좀 손해 보는 것이 낫겠구나 하는 동정심을 사는 방법이 마지막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즐거워했다.

 은행들이 전산화 되어 온라인 시스템을 시작하고 월급봉투의 시대가 막을 내렸을 때도 삥땅의 사례는 남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통장을 두 개를 만들어, 월급을 송금 받는 은행과 집으로 송금하는 은행이 달라서 월급날만 되면 이 은행에서 저 은행으로 왕복하는 사람에게 “집으로 바로 송금하면 될 것을 왜 귀찮게 이 은행 저 은행을 왔다 갔다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은행에서 저 은행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약간의 돈이 남는다.”는 대답에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을 맛본 적도 있다.

 없어진지 오래되었지만 월급날만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은 정장을 차려입은 술집 아가씨가 외상술값을 받으러 휴게실로 출근하는 색다른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었고, 술 총무가 각자 먹은 술값을 날짜별, 사람별로 계산한 표(우리들은 이 표를 장판지라고 불렀다.)를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걷은 한 달 치 외상값을 갚으려고 술집에 들렸다가 동냥거리(외상값을 걷어주면 고맙다고 맥주 2병과 마른안주 한 접시를 공짜로 줌) 때문에 그 날부터 다음 달 치 외상을 지기 시작하는 일도 흔히 있었다고 기억한다.

 추억 속의 일이지만 그래도 그 때는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통장도, 도장도, 비밀번호도 다 빼앗긴 지금 생각해보니 한 달에 단 하루만이라도 마누라에게 큰소리 칠 수 있었던 그 때가 정말 그립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1인 시위라도 해야겠다.  

 “적더라도 좋으니 나에게 월급이 현찰로 들어 있는 월급봉투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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